언어에 대한 조종과 통제에 의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움직여집니다.

이것을 우리는 언어의 정치성

이라고 부릅니다.

리틀 시스터즈의 방법론은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적 규칙들을

정치적이고 창의적으로 유희하고,


대안의 언어를 창조합니다.

리틀 시스터즈 언어창조회는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의 소설 『1984』(1949)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권력집단 빅 브라더와 대조되는 이름입니다.

소설 속 빅브라더

가 만들어내는 신

어(新語,

Newspeak)가 권력을 통해 유희하고,


억압을 강화한다면,


리틀 시스터즈의 언어는

언어의 권력 불평등을 해소함으로써

기존 권력에

저항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빅 브라더의 언어는 관료적이고 하향식이며

권위적이지만,

리틀 시스터즈의 언어는 창조적이고

상향식이며 저항적입니다.

신어는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만큼,

어휘 선택을 최소한도로 줄이는 것도 신어의

고안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되었다. p420





조지 오웰, 『1984』, 정희성 옮김, 민음사 (2003)



신어의 고안 목적은 영사의

신봉자들에게 걸맞은 세계관과 정신

습관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영사

이외의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적어도 사상이 언어에 의존하는 한,

신어가 일단 전면적으로 채택되고 구어가

잊히게 되면 이단적 사상, 즉

영사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상은

그야말로 설

자리가 없게 된다. p.419

이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어휘를

창조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비정통적인 의미를 지닌

낱말을 삭제하고 한 어휘의 2차적 의미를

제거함으로

가능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신어에는 아직도 'free(자유로운)'라는

낱말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This dog is free from lice. (이 개에는 이가

없다.)'라든지

'This field is free from weeds.

(이 밭에는 잡초가 없다.)'라는 식의

문장에만 사용될 수 있을 뿐,

'pollitically free(정치적으로

자유로운)'라든지 'intellectually

free(지적으로 자유로운)'라는 옛날식

표현으로는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치적·지적 자유란 이제

더 이상 그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념이 없으면 낱말도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LSLCC는

타인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이념에 따라

자행되는 모든 차별과


계층 간의 착취와

종말을 향해가는 환경 파괴는

유토피아적 창조의 원리를 배반합니다.

새로운 언어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행간을 읽어가며,

다정한 말과 모욕하는 말을

구별할 줄 알며,

때에 따라 친근하고 이해

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합니다.

누군가가 무언가에

붙인 이름은

세상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반영합니다.

리틀 시스터즈는

새로운 언어로

스스로를 호명하며

명명되는

객체에서

명명하는

주체가 됩니다.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근원의 세계에는

말이 세상을 창조하고

작명은 존재를 책임졌다.

세상은 신성한 존재의 말을 통해 창조되었다.

말은 신의 존재이자 힘이고 행동방식이었다.

신성한 존재는 자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여


말과 언어를 물려주었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신이 만든 다른 피조물들을 이해하여 이들의 이름을 부여하는

창조자이자 번역자로서 이들을 다스려야 하는 책임을 맡았다.

다른 존재를 정의내리는 인간은

신이 흡족히 여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피조물들의 존속을 책임졌으므로,

그의 통치 행위는 책임감 있는 사랑 행위를 의미하였다.

하지만 오만은

관계를 타락시키고

존재는 언어에 의해 오염되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불순종의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창조 질서에 균열을 일으켰으며,

더이상의 유토피아는 없다.


언어는 더 이상 사랑과 축복의 도구가 아니게 되었고,

남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자기 중심의 무기가 되었다.

남자는 한때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불렀던 여자를

'신이 내 곁에 두신 여자'로 불렀다.


이름 짓는 것은 이제 이름 지어지는 것의

본질을 왜곡하고 관계를 파괴한다.


죽음이 도래하였다.

인간들은 자신의 부끄러운 몸을 죽음의 산물인 가죽으로 가린다.

모두가 다른 언어를 쓰게 되고

철저히 번역 불가능한

타자를 마주한다.

인간은 신과의 대면을 선택한다.

이들은 태포에서 시작된 단 하나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힘을 합쳐 지성을 이루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은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들은 탑을 이루는 돌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한층 한층 높아져갔다.

이를 바라보던 신은 언어를 뒤섞음으로써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게 하였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되어 소통할 수 없게 된 인간들은


탑 쌓는 일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들은 언어로 서로를 구별하고 차별하게 되었으며,

서로 다른 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밀려난 것들을

재호명하는 인간은

다시 오며,

새로운 언어로 불러들인다.

두 번째 만들어진

인간의 모습으로.

두 번째 인간이 세상에 오고,

본디 인간의 창조 때에 맡겨졌던 임무인

이름 짓는 일을 다시 수행하기 시작한다.


두 번째 인간은 의미가 사라지고

존재가 밀려난 것들이 있는 곳에 가

이들의 잊혔던 이름을 부르고,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그들에게 다가갈 때에

그들만의 익숙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고,

정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 모욕적인 이름을 외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의미가 흐려지고 왜곡된 것들을

새롭게 정의 내리는 것을 계속했다.

단 하나의 언어 안에서

모두가 다르지 않고 하나이며

말은

침묵 중에도

선하다.

두 번째 사람에게 새로 이름 받은 자들이

한 데 모여 신성한 자와 이야기할 때에,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경험을 한다.


한때 뒤죽박죽되고 흩어졌지만,

다시 돌아올 기원의 언어가 도래한다.

다른 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수단,

즉 의미 잃은 것들을 재호명하고, 재명명하며, 재정의하는

유토피아의 언어로서.